저 남자는 누구야?

 1.

요전에 아이가 타이타닉에 대한 책을 읽었다.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 쓴 논픽션 책이었다. 그 배가 북아일랜드에서 만들어졌으며 그 당시 가장 큰 배로 영국 남부 사우스햄튼에서 출항해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중 항해 4일째 밤 몇 시에 빙산에 부딪혀 2시간 동안 만엔이 침몰하고 2000명가량의 승선인원 중 23개에 달하는 1,500명이 사망했다는 것 등이다. 그런 내용의 책이었다. 그걸 읽고 흥미가 발동했는지 책에 나오는 장면을 보고 유튜브에서 다양한 영상을 찾아보고 다시 내게 와서 이것저것 (안 알려줘도 되는데) 알려주곤 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대충 기억에 의지해도 이만큼 디테일을 쓸 수 있게 됐어

유튜브에서 본 영상 중에는 우리가 아는 영화 타이타닉 편집본이 있었다. 주요 장면만 편집한 지 한 5분쯤 지난 것 같은데 그걸 보고 아이가 핵심 사건을 모두 파악했다. 그들은 잭과 로즈의 애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 타이타닉은 드라마화한 것이고 역사적인 일이라 그렇지 사건 개요는 간단하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냥 둘걸, 내가 이건 영화 장면이야 했더니 보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 그럼 같이 볼까?” “응” “차 습기 차는 장면만 보여줘야지” 했어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영화 초반부터 어린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배를 발굴하는 장면은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았지만 할머니 모시고 와서 대화하는 장면 정도부터는 전혀 집중이 안 된다. 그래도 어차피 보기 시작했으니까 조금 더 볼게 그러나 K의 눈에 쓸데없는 장면이, 공감하기 어려운 장면이 너무 많다. 잭이 포커를 칠 때 왜 그것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타이타닉호의 모습이 보여 집중도 잠시, 로즈가 나타나면서 그 비참한 갑부 놈이 나타났는데 거기서 사고가 났다. 저 남자는 누구야? “그래, 로즈의 약혼자야?” “약혼자?” “그래, 결혼하기로 한 사람?” “잭이 아니라?” “응, 그때는 부모님이 결혼할 사람을 골라주시곤 했어.” “……”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눈치였다. 그리고 이때 시들해진 듯했다.

어떻게든 조금씩 해나가면서 영화의 거의 중간 부분까지 왔다. 그래서 좀 쉬어보기로 했어. 간식 먹었어 사과 먹었다고 그랬어 그리고 K가 말했다. “그만 둬.” “글쎄.” 화장실에서 일하던 기분으로 그날 밤 아버지는 혼자서 영화를 보았다.

그날을 회상하며 영화의 나이 등급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겨울왕국2도 극장에서 자주 보고 집에서 실사영화 알라딘(2019)도 한자리에 보는 등 전보다 소화력이 좋아진 것을 알고 이것도 해볼까? 했는데 이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연령등급이 폭력성이나 선정성뿐 아니라 이해수준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 그것을 상기하게 된 경험이었다

2.

결국 이 역시 타이밍에 관한 얘기다.

내 USB 안에 있는 문서 중에 책, 영화, DVD 같은 이름이 적힌 게 하나 있다. 구입하는 자라는 이름의 리스트다. 거기에 적힌 작품들 중 상당수는 내가 봤거나 읽은 것들이다. 그런데도 구입하려는 이유는 K에게 소개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보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다. (내 볼거리도 선정의 기준이다.)

그중에는 윤승은 화백의 맹콩 서당 시리즈처럼 조만간 집에 들여놔도 될 것 같은 것도 있고 박시백의 35년이나 윤태호의 야후처럼 5년가량을 기다려야 하는 작품도 있다. 10여 년 뒤에 읽어도 괜찮은 열하일기는 나도 아직 읽어본 적이 없지만 지리와 여행을 좋아하는 아들도 좋아할 것 같다. 같이 읽으면 진짜 좋은 것 같아

그때를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